머리가 잘린 몸체 하나가 다른 온전한 몸을 지닌
슬픈 무리와 함께 태연히 가고 있는 그 모습이.
그자는 자신의 잘린 머리를 초롱불처럼
양손으로 받쳐 들고 있었다. 그 머리는
우리를 쳐다보며 "아이고, 내 신세야!" 하고 말했다.
제 몸으로 제 등불이 되었으니,
하나 속에 둘이요 둘 속에 하나였다.
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는 그를 벌한 분만 아실 테지.
...
"내가 받는 흉악한 벌을 보시오.
숨을 쉬면서 죽은 자들을 찾아다니는 자여!
이보다 더 끔찍한 것을 본 적이 있는가?
...
젊은 왕에게 사악한 암시를 주어
아버지와 아들을 서로 반목하게 한 사람이오.
...
서로 굳게 믿는 자들을 내가 갈라놓았으니.
아, 고달프구나! 나의 머리를 몸뚱어리에서
떼어 내 이렇게 들고 다닌다오.
죗값을 내 안에서 이렇게 나타났다오."
<< 출처 : 신곡 지옥편 단테 저/박상진 역 | 민음사 >>
단테의 신곡은 사후의 세계를 묘사하고 있다.
먼저 이 글을 번역하신 분 정말 대단하신 것 같다.
그중 내가 생각한 제일 잔인한 벌은 내 안에서 죗값을 치르는 것이다.
'제 몸으로 제 등불이 되었다.'
머리가 달려 있지 않은 자신의 몸뚱어리를 바라보는 심정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.
머리가 잘려나간 순간과 그 잊을 수 없는 고통, 그 모습을 기약도 없이 바라봐야 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두려울까!
'하나 속에 둘이요 둘 속에 하나였다'
죄를 받는 이는 하나지만 그 하나가 둘이 되었고 그 둘은 원래 하나였으니
그 안타까움이 나에겐 제일 큰 죄로 와 닿았다.
이 책의 원서에는 이 부분이 어떻게 묘사되어 있을지 궁금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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